IT서비스 기업을 위한 경영학 (2) - 한국 IT서비스 대기업의 구조적 문제점
- 박준성 박사: Univ. of Iowa 종신교수, 삼성SDS CTO, KAIST 초빙교수
- Feb 19
- 5 min read
Updated: Mar 2
하청업체 외주인력에 과다한 의존
본 시리즈 'IT서비스 기업을 위한 경영학'의 1편 'IT서비스 기업의 국제 비교'에서, 한국의 IT서비스 대기업들은 글로벌 IT서비스 기업들의 경영 관행을 따르지 않고, 자사의 훈련된 직원의 전문 지식, 스킬을 활용하기 보다, 제3 업체의 외주 직원들을 많이 활용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1편을 못 읽은 분은 다음 링크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한국의 IT서비스 대기업들이 선진국의 IT서비스 기업들과 달리 타 사의 개발자를 외주로 많이 활용하는 사업 행태를 견지하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제조업 경영 모델을 답습한 한국의 IT서비스 대기업
무엇보다도, 한국의 IT서비스 대기업들과 선진국의 IT서비스 기업들은 그 창업 배경부터 크게 다르다.
예컨대, 미국의 액센츄어는 세계 최초의 IT서비스 기업으로, Arthur Andersen이라는 회계법인이 고객사의 회계 업무를 전산화해 주기 위해 설립한 회사이다. 창업한 모기업도 전문서비스업(Professional Service Business)을 해 온 기업이어서 새로 창업한 IT서비스 사업도 똑같이 전문서비스 사업 모델을 취한 것이다.
전문서비스 사업 모델은 그 특징이 무엇인가? 회사의 직원이 크게 세 부류로 구성된다. 파트너(또는 시니어, VP 등으로 불림)는 회사 내 최고 전문가들로서 영업과 고객 관계를 책임지며 회사의 이익을 분배 받는다. 매니저는 회사의 운영과 프로젝트의 감독을 수행하고, 주니어들이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기술적 실무를 담당한다. 시니어들은 주니어들을 전문가로 훈련시켜, 고객 프로젝트에 제 임금의 2배 이상의 가격에 투입함으로써 이익을 창출한다. 파트너, 매니저, 주니어들을 미국 IT서비스 업계에서는 Finder, Minder, Grinder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의 IT서비스 대기업들, 예를 들어 삼성SDS, LGCNS 등은 1980년대 후반 그룹 내 계열사의 전산실들을 모아 설립하였다. 이들은 모 그룹의 주력 기업들인 제조업의 사업 모델을 답습하고 있다. 이 기업의 고위 임원들은 IT서비스 분야의 최고 전문가인 파트너 타입이기 보다는 조직 관리를 잘하는 매니저 타입이다. 따라서 수주 영업을 고위 임원이 하는 대신, 영업 부서와 영업만 하는 직원을 따로 두고 있다. 이런 것이 전문서비스 사업 모델에는 없는 관행이고, 반면 제조업에서 보편적으로 행해지는 관행인 것이다.
서비스 영업과 이행의 분리
이런 영업 관행은 프로젝트 수주와 프로젝트 이행을 분리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영업은 수주 확대에 주력하여, 회사 내의 컨설턴트, 개발자들이 감당할 수 없는 프로젝트의 부실 수주를 저지르기 십상이다. 또한 수주 확대를 위해 자사 인력에 외주 인력을 더하여 프로젝트를 제안하기 십상인 것이다. 제조업 사업 모델에 익숙한 경영진은 프로젝트 이행에 1차, 2차, 3차 하청업체의 외주 인력을 활용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는 것이 보통이다. 선진 IT서비스 기업들에서는 수주를 리드한 시니어가 서비스 이행 프로젝트 성공에 대해서도 책임을 진다.
대내 서비스(Internal Service)와 대외 서비스(External Service)의 혼재
한편 한국의 IT서비스 대기업들은 1차적으로 그룹 내 계열사를 위한 대내 IT서비스(Internal Service)의 책임을 지고, 2차적으로 그룹 외 고객사를 위한 대외 IT서비스(External Service)도 제공해왔다. 예컨대 삼성SDS 경우 2023년 대내 사업의 비중이 충 매출의 66%이었다. 선진국에서는 그룹 대내 서비스는 그룹 CIO가 IT 조직을 데리고 수행하는 데, IT 조직(한국의 전산실)은 이윤을 추구하는 사업 조직이 아니고, 회사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지원 부서이다.
아래 표는 한국 IT서비스 대기업의 구조적 문제점을 드러낸다. IBM 경우, 그룹 대내 IT서비스 책임은 지원 조직인 IBM IT가 맡고, 이윤을 추구하는 IT서비스 사업은 사업 조직인 IBM 컨설팅이 맡고 있다. IBM 전체 직원 수가 2025년 현재 28만명인데, IBM IT가 1만2천명, IBM Consulting이 16만명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의 SDS는 그룹 대내 IT서비스 지원과 이윤 추구 IT서비스 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삼성 그룹 전체 직원 수가 IBM과 같은 28만명인데, SDS가 1만4천명을 보유하고 있다. SDS 규모는 IBM IT 규모와 비슷하여, 이 적은 인원을 가지고 대내 지원과 대외 사업을 모두 한다는 것은 무리로 보인다. 그룹 대외 서비스에 투입할 인력이 부족한데, 대외 매출을 올려 보려고 무리하게 외주를 많이 쓰곤 한다.

IT서비스 수요자와 공급자 역할의 혼재
한국 IT서비스 대기업의 CEO는 그룹 CIO 역할도 하면서, 대외 고객에게 IT서비스를 팔아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역할도 가지고 있다. 이 두 가지 역할은 수요자와 공급자 역할로서 정반대의 입장인데, 이러한 상충되는 역할을 한 기업의 CEO에게 맡기는 경우는 전세계 어느 산업에서도 볼 수 없는 기형적 경영 형태이다.
그룹 CIO는 그룹 내 모든 계열사의 IT 기반 디지털 변혁을 지원하는 데 골몰하고,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영역 별로 최적격의 외부 IT서비스 업체들을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 반면에 이윤 목적의 IT서비스 사업을 책임진 리더라면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한 가지 서비스 라인이라도 시장 최고의 경쟁력을 갖춰 고수익, 고성장 사업을 일궈야 할 것이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한 가지 서비스 라인이라도 글로벌 시장 최고의 경쟁력을 갖춰 고수익, 고성장을 시현하는 IT서비스 기업이 우리나라에 많이 생기기를 염원한다.
IT서비스 산업의 전방 산업에 무분별한 진출
한국의 IT서비스 대기업들은 IT서비스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 SW제품도 만들려 하고, 클라우드 서비스도 제공하려 하고, 매번 실패를 경험했는데도 몇 년 지나면 또 뛰어 들곤 해 왔다.
라이선스를 파는 On-Premises SW제품(소위 SW패키지), SaaS, PaaS, IaaS, 컴퓨터 하드웨어 등은 IT서비스 제공 시 투입물로 사용되는 전방 산업이다. 마치 병원의 전방 산업은 제약 산업, 의료기계 산업이 있고, 건축시공 산업의 전방 산업은 건축자재 제조업이 있듯이, IT서비스의 전방 산업은 SW제품, 클라우드 서비스, 컴퓨터기기 산업 등이 있는 것이다.
이들 전방 산업(Upstream Industry)은 표준 상품을 수만~수억 고객 즉 Mass Market에 판매하는 Make-to-Stock형 산업이다. 반면 후방 산업(Downstream Industry)인 병원, 건축시공, IT서비스 산업 등은 전방 산업의 표준 상품을 선별 사용하여 고객 별로 상이한 솔루션을 창출 제공하는 수주형, Engineer-to-Order형 산업이다.
병원들이 제약 사업도 병행하나? 건축시공업체들이 건축자재 제조업도 병행하나? 안 한다! 왜 안 할까? 하면 전후방 사업 간의 상충으로 회사 전체 경쟁력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전후방 산업은 공생 관계에 있는 별개의 산업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SAP ERP 제품을 Accenture가 많은 고객에게 구현해 줌으로써, SAP도 매출이 늘고, Accenture도 매출이 는다. Accenture는 SAP ERP만 구현하는 게 아니고, 많은 고객들이 원하는 ERP 제품이면 어느 거나 구현한다. SAP는 Accenture만 구현 파트너가 아니고 수 천 개의 IT서비스 파트너 업체가 있다. 요즘은 SaaS, PaaS, IaaS가 대세이니 Accenture도 고객에게 SaaS 구현, PaaS 기반 솔루션 개발, IaaS의 Managed Service를 제공하고 있다. 클라우드 서비스 산업을 전방 산업으로 적극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Accenture가 ERP 제품을 하나 만들어 판다고 상상해 보자. Accenture는 수많은 ERP 고객 중 자사 제품이 차지한 5% 시장 점유율만 가질 수 있으니, 뭐 때문에 ERP 제품을 만들어 95%의 시장을 버려야 하나? 한편 Accenture 내의 ERP 제품 사업 부문을 보자. 이 제품은 Accenture IT서비스 부문이 주로 구현하고 다닐테니, 나머지 수많은 IT서비스 업체들을 파트너로 못쓰고, 매출이 제한된다. 현명한 사업가라면, IT서비스 사업과 ERP 제품 사업을 별개의 기업으로 설립해서, 각기 전후방 기업들을 100%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Microsoft나 SAP 같은 SW제품 벤더는 IT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Accenture나 IBM Consulting 같은 IT서비스 업체는 SW제품이나 클라우드 서비스를 개발하여 판매하지 않는다. AWS나 Google 같은 클라우드 서비스 벤더는 IT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삼성SDS가 UniERP라는 SW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다가 적자가 누적되고 고객 불만이 치솟아 결국 사업을 중단한 사례가 전방 산업에의 무분별한 진출의 결과를 보여 준다.
위와 같은 전후방 사업의 충돌 외에도, IT서비스 사업과 SW제품 사업은 경영 모델이 현저히 다르기 때문에 두 사업을 한 회사에서 병행하는 것은 일부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이유로 한국 IT서비스 대기업들이 SW제품 개발 판매를 시도해 왔지만 한번도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SaaS, PaaS, IaaS 등 클라우드 서비스 사업의 경영 모델 또한 IT서비스 사업과는 현저히 다르기 때문에 어느 선진 IT서비스 기업도 클라우드 서비스 사업을 혼합하지 않는 것이다. SW제품 사업, 클라우드 서비스 사업, IT서비스 사업을 모두 하고 싶으면 각각 별도의 사업으로 독립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IBM이 IBM Software 사업, IBM 클라우드 서비스 사업, IBM Consulting 사업을 완전히 분리하여 운영하는 게 한 예이다.
한국 IT서비스 대기업의 구조적 문제점
이와 같이 한국 IT서비스 대기업들은 하청업체 외주인력에 과다한 의존, 부적합한 제조업 경영 모델의 답습, 서비스 영업과 이행의 분리, 모 그룹 대내 서비스와 대외 서비스의 혼재, IT서비스 수요자와 공급자 역할의 혼재,IT서비스 산업의 전방 산업에 무분별한 진출 등 많은 구조적 문제로 인해 저수익, 저성장을 못벗어나고 있다.
인도의 IT서비스 대기업들은?
인도의 Infosys는 1981년 7명의 가난한 개발자가 모여 창업한 IT서비스 업체인데, 1편 'IT서비스 기업의 국제 비교'에서 봤 듯이(https://www.kosta-online.com/post/international-comparison-of-it-service-companies) 이제는 세계 굴지의 IT서비스 기업으로 성장하여, 2025년 현재 년 매출 27조원, 영업 이익률 24%, 직원 수 32만명을 과시하고 있다. 기업의 시장 가치 즉 경쟁력을 나타내는 P/S(Price-to-Sales) 비율도 인포시스는 4.8, 액센츄어 3.7, 삼성SDS는 1.0을 시현하고 있다.
인포시스 같이 고수익, 고성장을 실현한 해외의 IT서비스 기업들은 어떻게 그렇게 했을까?